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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닥일기 159. ( 내가 틀릴 때도 있다 1. )나의 이야기 2019. 2. 19. 18:35
일요일 아침, 병실을 잠깐 돌아보고 진찰실로 내려왔는데 간호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 원장님. XXX 환자 보호자가 원장님을 만나시겠다고 하는데요. >
오늘은 내가 당직이 아니지만 병원 기숙사 원룸이 내가 사는 유일한 집이니
특별한 일로 가끔 병원을 떠나는 날을 빼면
나는 일 년 내내 매일 당직을 서고 있는 것과 같다.
할머니는 심장이 무척 안 좋으셔서 오래 동안 고생을 하셨고
얼마 전에는 장의 혈관이 막혀 장의 일부를 제거하셨다고 한다.
최근에는 신장기능도 떨어져 이제 투석을 해야 할 상황까지 되었고
며칠 전에는 섬망까지 나타났다는 환자이다.
그런데 팔과 다리피부에 출혈성 수포가 생겨 거의 모든 팔의 피부에 검은 반점이 있다.
그러나 원인을 알 수가 없고 마땅한 치료방법이 없어 스테로이드만을 써보다가
결국 모든 치료를 포기하고 고향인 이곳으로 3일전에 내려온 환자이다.
산소를 드려야하는 환자라서 집중관리실에 입원을 하고 계신데
숨이 차다고 누워계시지를 못 하고 항상 앉아 계시며
상처치료를 하고 팔 다리의 피부를 감싼 거즈와 반창고를 수시로 떼어버려
매일 여러 번 처치를 해야 하는 손이 아주 많이 가는 환자이다.
딸이 병실에서 담당간호사에게 불만을 토로하며 무척 힘들게 했다는데
무슨 불만이 있는 것인지 조금 걱정도 되었다.
< 어머니 팔과 다리 피부가 많이 부었네요.
앉아서 계속 상처를 긁으시니 상처는 더 벗겨지고 피도 더 나고 ... >
< .... >
< 가족들은 이미 모든 치료를 포기하고 그냥 돌아가시기를 바라는 것도 사실이지만..... >
< .... >
이런 분위기가 나는 참 싫다.
요양병원에서는 아주 흔한 일이지만 힘들어하는 보호자 옆에 있는 것은
항상 나를 힘들게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가장 괴로운 것이다.
< 하지만 저렇게..... 어머니를 저런 모습으로 보낼 수는 없습니다. >
< ???? >
< 상처를 바세린 거즈로 덮고 붕대를 감고
양손을 침대에 묶어두면 벗기지를 못 하실텐데... >
침상에서 붕대를 풀어 제치고 여기저기 피가 굳어있는 상처를 긁어 다시 피가 나오고
환자 옷에도 여기저기 피가 묻은 것을 보는 딸이 너무 힘들어하는 것 같아
나는 듣기만 했다.
환자의 팔과 다리가 일반사람들이 보기에는 끔찍하다고 생각을 할 것 같은데
딸의 마음이 편할 리가 없다.
나도 그런 환자의 모습을 보는 것은 피하고 싶은 것이니까.
그러나 딸의 생각은 나의 경험과 생각에 너무 어긋나는 것이 많아
내가 딸의 말을 가로막았다.
< 그럼 환자의 양손을 묶으라는 얘기신가요? 긁지 못하게... >
< 그렇게 하면 팔 다리에 있는 붕대도 깨끗하게 유지가 되겠지요...
지금은 너무 보기가 안 좋아서... >
< ?????>
내가 잘 못 들은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내가 잘 못 들은 것이었다면 좋겠는데
딸은 병원에서 잘 못하고 있다는 표정으로 나에게 항의를 하고 있는 것이다.
< 글쎄요.... 내 생각은 많이 다른데요. >
< .... >
< 할머니의 피부는 원인을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치료 방법을 모릅니다.
답답하니까 홀몬제를 써보지만 더 좋아진다는 기대를 못 합니다.
아마도 점점 더 나빠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어쩌면 그냥 가렵지만 말라고 약을 쓰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
< ........ >
< 가려운 곳을 못 긁게 한다면 어떨까요? 생각해 보셨습니까? >
< ....... >
< 나는 무척 괴로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고문이 될 수도 있겠지요.
나는 가려움증이 심한 환자를 가끔 봅니다. 심한 사람은 피를 흘리면서도 계속 긁지요.
유리조각을 쓰기도 하고 심한 사람은 칼을 쓰기도 합니다. >
< ..... >
실제로 옻닭을 먹고 두드러기가 난 환자가 며칠을 유리조각으로 피부를 긁다가
입원을 한 환자를 보았었다.
< 보호자끼리 의논을 해보십시오. 아마 다른 형제들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모든 보호자들이 동의를 한다면 그때 다시 생각해보겠습니다. >
나는 다른 보호자들이 동의를 할 리가 없다고 믿었다.
이미 더 이상의 치료를 포기하고 삶의 마지막을 정리하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외모일 리가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참을 수없는 고통을 인내하며
마지막 호흡을 내쉬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가장 편안한 마음으로 내가 사랑했던 사람과 이별을 하고 싶은 것이
대부분 사람들의 마음이 아닐까?
그리고 최대한 그 소망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의사의 사명이요,
환자를 배웅하는 사랑했던 사람들의 마지막 배려가 아닐까?
내가 판단할 일은 아니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옳고 너는 틀렸다는 생각이 이 사회를 점점 무서운 사회로 만들어 가고 있다.
다음날 아침, 할머니는 갑자기 숨을 몰아쉬며 무척 힘들어 하셨다.
항상 앉아계시던 분이 침상에 누워 힘들게 숨을 내 쉬고 계셨다.
급히 아들에게 전화를 하고 응급처치를 시작했다.
아들은 아무리 급히 와도 여기까지 4시간이 걸린다는데.....
밤새 갑자기 나빠진 할머니는 어제 딸이 우리에게 한 말을 들으셨을까?
아무리 불러도 눈을 못 뜨시는 것인지 안 뜨시는 것인지 할머니는 눈을 감고 계신다.
아들이 도착할 때까지 긴 시간을 숨을 몰아쉬며 기다리실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오늘도 나는 한 아들과 어머니의 마지막 만남의 자리를 위해
나의 모든 지식과 노력을 기우려야 한다.
내 힘으로는 절대로 안 되는 것이니 기도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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