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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닥일기 161 ( 나는 죄인이다. )나의 이야기 2019. 2. 25. 11:38
말기 암 환자가 입원을 했다.
5년전에 대학병원에서 전립선암 진단을 받고 계속 입퇴원을 반복하며 치료를 받았으나
최근에 방광, 신장 등 다른 장기에도 전이가 된 것으로 판단되는 환자다.
오래 전에 양측 요관이 막혀 양측 신장에 인공관을 넣고 투석을 하여 신장의 기능을 다시 찾았으나
오른쪽 신장은 위축이 되어 기능을 잃었고 나머지 왼쪽도 기능이 5% 밖에 안 남아
투석을 할 수밖에 없는 환자이다.
그러나 투석을 포함하여 모든 병원 처치를 포기하고 요양병원에 입원을 한 것이다.
가지고 오신 약을 보니 마약을 포함한 진통제가 있지만 암성 통증치료제 중에는 초기에 해당하는 약이다.
이 정도의 약으로 통증이 완화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것 같지가 않았다.
< 이것을 잡수시면 안 아프신가요? >
< 잘 안 듣는 것 같습니다. >
거의 대부분 요양병원에 입원하는 말기 암환자는 이 정도의 약으로는 통증조절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약은 요즘 심한 관절염 환자나 대상포진 환자에게도 처방을 하는 병원이 많다.
< 밤에 잠을 통 못 주무셔요. 그래서 이것을 물고 있는데 그래도 많이 아프다고 하시니.... >
역시 같이 온 부인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대답을 한다.
대학병원에서 아플 때마다 쓰라고 했다며 입안에 넣고 돌려가며 진통효과를 보는 약을 보여주는데
이 환자의 경우는 하루 종일 아파서 이약이 별로 도움이 안 된다고 한다.
< 아마 이제는 이것으로 진통효과를 보기 힘들 것 같습니다. >
< 예. 안 들어요. 밤에 잠을 못 자고 아프다고 하시니 나도 참 힘들어요. >
< 며칠 후에 다시 약을 타러 대학 병원에 가시는 날이니까 그때 병원에 가셔서
약을 조금 강한 것으로 달라고 하십시오. 기본적으로 먹는 약도 있지만 가슴에 부치는 것도 있으니
그런 것이면 더 좋겠습니다. >
< 예. 그렇게 해 보지요. >
그렇게 입원을 하셨는데 며칠동안 잠을 제대로 못 주무시고 고생하는 환자를 보는 것이
나도 마음이 안 좋았다.
우리 병원에도 마약진통제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며칠 후, 부인이 아침 일찍 대학병원으로 가신 날은 빨리 부인이 오기만을 기다렸는데
부인은 밤에도 병원에 오지를 않았다.
그리고 다음날 부인이 와서 나에게 어제 일을 전했다.
< 약이 필요 없답니다. >
< ??????? >
담당의사는 챠트를 보면 환자를 안 보아도 지금 쯤 환자가 많이 아파할 것이라는 추측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약이 필요 없다고 하는지.....
< 몇 달 전에 담당 교수님이 이제 더 이상 할 것이 없다고 일반진료를 해서 약만 타가라고 하셨거든요.>
이제 더 이상 병원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약만 타서 먹는 것이니 굳이 특진을 해서 기다리지 말고
그냥 일반진료를 하는 것이 더 빠르고 편리한 방법이라는 뜻이다.
< 그런데 이제 몸에 독이 가득 차서 투석을 하지 않으면 약도 소용이 없다고 약을 안 주네요. >
맞는 말이지만 투석은 환자가 거부를 한다.
다시 회복이 된다는 희망이 없는데 투석을 하면서 더 살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럼 말기암 환자인데 통증이라도 완화시켜주어야 되는 것이 아닌가?
우선 너무 아파서 사람이 못 살겠다고 하는데....
< 내가 뭔가 잘못 한 것이 있나 하고 다시 접수를 해서 기다리다가 오후에 들어갔더니
또 귀찮게 하지 말라고 하더군요. >
부인은 어이가 없다고 한숨을 내쉬고 환자는 아주 나쁜 놈들이라고 욕을 하는데 나는 할 말이 없다.
이럴 때는 우리 병원도 마약을 구비해 놓고 싶다.
진통제가 떨어지면 보호자에게 약을 타다 달라고 부탁을 하는 것이 참 힘들다.
보호자는 더 힘들겠지만.....
그러나 마약은 관리가 힘들다.
약사가 마약관리를 해야 하는데 관계기관에서 수시로 점검을 나오는 것도 귀찮고
만약 실수라도 해서 약 재고에 차질이 생기면 고통스러운 일을 당하니 그 스트레스가 많은 것 같다.
그래서 약사는 처음부터 마약 취급을 하지말자고 마약을 취급하는 병원은 힘들어서 근무를 못 한다고 했다.
시골병원은 의사, 간호사, 약사는 물론 식당조리원등 모든 직원을 구하기도 참 힘들다.
지역신문과 소개소등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구인광고를 내도 몇달씩 문의조차 없을 때가 대부분이다.
차라리 말기암 환자는 의식이 떨어지거나 치매에 걸린 것이 더 나은 것 같다.
스스로 통증을 참고 있는 것을 보는 것도 마음이 참 괴롭다.
무척 아플 것 같은데 .....
나는 저렇게 잘 참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가끔 많이 아프냐고 물으면 항문이 빠져나가는 것 같아 밤에 잠을 못 잤다고 하신다.
그래도 옆에 계신 환자 분들이 저 환자 때문에 잠을 못 잤다고 불평을 하지 않고 조용한 것을 보면
통증이 와도 신음소리도 안 내고 혼자 참고 계신 것 같다.
며칠을 고민하다가 결국 내가 죄를 짓기로 했다.
마약 사범이 되는 것이다.
마침 다른 말기암 환자가 마약을 쓰시다가 얼마 전에 돌아가신 분이 있었다.
남은 약을 보건소에 반납을 하려고 금고에 보관하고 있었는데 그걸 쓰기로 마음을 먹었다.
법적으로는 안 되는 일이지만 내 양심에는 부끄러움이 없으니 꺼내 쓰기로 했다.
나는 죄인이 되었지만 어제 밤은 잘 잤다고 하시는 환자의 웃음이 나를 기쁘게 한다.
그러나 기쁜 마음도 잠시 나는 오늘도 죄를 짓는다.
시골 병원의 열악한 환경이 엄격한 법을 따를 수가 없어 나는 매일 죄인이 되고 있다.
그리고 아주 못된 사람이 된다.
아주 못 된 생각, 그리고 의사가 하면 안 되는 기도.
< 하나님! 제발 저 환자를 빨리 데려가 주십시오.
우리 약국 금고의 마약이 다 떨어지기 전에 제발 하루라도 빨리..... >
이렇게 나는 마약사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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