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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닥일기 155 ( 성채 )나의 이야기 2018. 10. 11. 14:32
두 달전 일이다.
관절이 안 좋은 듯 걷는 것이 불편해 보이는 할머니가 아들과 같이 우리 병원을 찾아왔다.
할아버지의 진단서를 들고 우리 병원에 입원이 가능한지 상담을 오신 것인데
진단서를 보니 내가 처음 보는 병명의 환자다.
심장 근육병으로 인한 심장의 기능 저하 환자인데 심장이식 외에는 치료 방법이 없다.
이런 심장병 환자를 도시가 아닌 시골의 요양병원에서 관리한다는 것은
너무 큰 부담이 돼서 정중히 거절을 했다.
< 그럼 그냥 집에서 돌아가시라는 말입니까? >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지만 지금 환자를 위해 아무 것도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어
이것이 마지막 선택이라고 아들은 절박한 마음으로 호소를 했다.
답답한 아들의 마음은 알겠지만 내가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 우리 병원은 치료가 목적이 아니고 요양이 목적이라 시설이 좋지가 않습니다.
검사 시설도 기본적인 검사만 가능하고 교통도 안 좋아 급한 상황이 생기면
여기서 대학병원까지 가는데 2시간 가까이 걸립니다. >
< ..... >
< 도시의 병원에 입원을 하시는 것이 조금 더 안전하지 않겠습니까? >
< 그동안 어머니가 아버지를 돌보셨는데 이제 밥도 못 잡수시고,
홀로 일어나 앉지도 못 하시니 어머니가 도저히 감당을 못 하시겠답니다. >
대부분 노인이 병석에 누우면 배우자가 수발을 드시는데,
많은 경우에 배우자의 건강이 빨리 나빠지고 결국 배우자도 환자가 되고
가끔은 배우자가 먼저 돌아가시는 경우도 있었다.
< 우리가 여기서 마땅히 해 드릴 수 있는 것이 없을 것 같습니다. >
< 무엇을 해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집에서 돌아가시게 할 수가 없어서 그럽니다.
여기서 안 받아주시면 우리는 갈 데가 없습니다.
그냥 집에서 돌아가시게 하란 말입니까? >
< .... >
< 나도 오늘 바로 서울로 올라가야 합니다. 너무 답답해서 급히 내려왔는데
어머니가 더 이상 간병을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없습니다.
그냥 병원에서 돌아가시게 해 주십시오. >
옆에 계신 할머니의 지친 모습을 보니 할머니도 환자로 보여 거절을 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요양 병원이지만 환자가 돌아가시면 의사도 마음이 안 좋다.
더 이상 병원에서 해 드릴 것이 없는 환자라도 막상 사망을 확인하고 나면
의사로서 알 수없는 허전함과 무력감이 잠시 나를 괴롭게 한다.
그것이 싫은 것이다.
그러나 아무 도움도 받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환자를 거부할 수가 없어 입원을 받았다.
다음 날 구급차를 타고 온 환자를 보니 깡마른 체구에 피부는 건조하고
입안도 침이 안 나오는 사람처럼 바싹 말라있었다.
입맛이 있으려면 침이 흘러야하고 음식을 삼키려 해도 침이 있어야 하는데
입안에 물기라고는 전혀 없었다.
그러니 그동안 식사를 못 하시고, 먹은 것이 없으니 변을 못 볼 수밖에 없었겠지.
처음 며칠은 대학병원에서 받아온 약을 그대로 드리고 심장의 부담을 생각해서
수액도 극히 적은 양을 천천히 드리며 환자를 관찰하였는데
마치 유리 바닥에 서있는 마음으로 걱정이 많았었다.
나는 이런 환자는 관리해 본 경험이 없었다.
우선 심장병이라는 것은 무척 조심스러운 병이지만
이 환자는 다른 심장병처럼 흔한 병이 아니라 더 걱정이 많았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 내 마음이 조금 안정을 찾은 후 환자를 다시 생각하며
조금씩 내 생각을 더 하여 치료를 시작했다.
그리고 의사 입장보다 환자의 입장에서 더 많이 생각하고 결정하기로 했다.
나는 병을 치료하는 의사가 아니라 사람을 치료하는 의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평소의 생각이었다.
나는 심장병 전문의가 아니다.
이런 심장병은 어떻게 치료해야하는지를 나는 잘 모른다.
다만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사람답게 살다가 사람답게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평소 생각대로 지금까지 환자를 대하였고 지금도 그 생각에 변함이 없다.
단 하루를 살더라도 사람같이 살다가 가고 싶은 마음이지
모든 일상을 남의 도움에 의지하여 수년을 살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모험을 시작했다.
요양병원 의사가 대학병원 처방을 바꾼다는 것은 마치 칼을 든 검객이
신무기로 무장한 특공대를 쉬라하고 적과 대결을 하겠다는 것과 같다.
대학병원과는 비교가 안 되는 시설로 감히 도전을 하다니.....
그러나 나는 삶의 길이가 아니라 삶의 질을 선택하기로 했다.
그래서 우선 너무 강하다 생각하는 이뇨제부터 줄였다.
물론 심장의 부담은 늘겠지.
그러나 탈수가 심하여 입에 침이 말라버리는 것은 조금 좋아지겠지.
입에 침이 고이면 우선 밥맛을 알게 될 것이고 밥을 씹어 삼키기가 쉬울 것이고
그리고 힘이 생길 것이라는 너무 간단한 생각을 했다.
심장의 부담이 늘어 숨이 차다하시면 그때 다시 약을 쓰면 되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내 생각을 실천에 옮겼다.
약을 줄이고 나서 며칠이 지나서 환자는 입안에 조금 윤기가 도는 것 같았다.
그리고 며칠이 더 지나니 입술에 촉촉한 윤기가 보였다.
다행이 아직 숨이 차다고 하시지는 않으니 조금 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약 10일 지나니 미음을 조금 잡수시던 환자가 미음이 적다고 죽을 달라고 하신다.
그리고 한달이 지나면서 환자는 혼자 일어나 앉기도 하셨다.
환자 자신도 무척 좋아하신다.
이제 조금 있으면 걸을 수 있다고 하셔서 아직 어지러우시니
침상에서 내려오지 마시라고 했다.
혈압이 낮아 오래 앉아계시면 어지럽다고 하셨지만 누워계시는 동안은
불편한 것은 없다고 하셨다.
그리고 두달이 지난 며칠 전,
약을 타오는 대학병원에 예약이 되어 있어 담당교수를 만난다고 가셨다.
다시 해본 혈액검사 결과도 입원하실 때 이상을 보였던 수치가 모두 정상을 유지하여
나도 무척 기분이 좋게 다녀오시라고 했다.
오후 늦게 환자가 다시 돌아왔다며 간호사가 대학병원에서 받은 처방전을 가지고 왔다.
< 더 나빠졌다고 한달 후에 다시 오라고 했다네요. >
나는 간호사가 농담을 하는 줄 알았다.
< 그래서 약도 한달치만 가지고 오셨어요. >
너무 뜻밖이었다.
내가 자세한 검사는 못 해보았지만 그냥 보기에는 무척 좋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식사도 잘 하시고, 혼자 침상에서 앉아계시다가 눕기도 하시고,
집에서는 변비로 고생을 하셨는데 요즘은 모든 것이 만족스럽다고 좋아하셨는데...
갑자기 머리가 멍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다리에 힘이 빠지고 무엇인가 허전한 것이 모든 의욕이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 그럴 리가 없는데.... >
무엇인가 잘 못 된 것이 있는 것 같아 환자의 방으로 갔다.
환자는 할머니와 같이 침상에 앉아 늦은 점심을 잡수시고 계셨다.
할머니가 가지고 오신 젓갈까지 2-3가지를 식탁에 놓고 맛있게 잡수시는데
이렇게 짜게 잡수시면 안 된다고 주의를 드려도 소용이 없다.
< 잘 다녀오셨어요? >
잠시 식사를 중단하시고 할머니가 인사를 하시며 이상하다고 하신다.
< 이제 식사도 잘 하시고...... 내 보기에는 많이 좋아지셨는데......
더 나빠졌다고 하시니.... 참 이상하지... >
< ..... >
< 당신 생각도 이상하지 않소? >
할머니가 할아버지의 동의를 구하는 듯했다.
나도 은근히 할아버지의 대답이 궁금해졌다.
< 참 이상하더군. 나는 이제 살 것 같은데......
병이 더 나빠졌다고 해도 할 수 없지. 그래도 나는 이렇게 살다가 가고 싶소.
아무 것도 못 먹고 오래 살면 뭐해? 나만 괴롭나?
당신하고 자식들 고생이나 더 시키지... >
사실 이런 생각을 말씀하실 것으로 기대를 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슬그머니 참았던 불평을 말하신다.
< 혈압을 잴 때마다 혈압이 낮다고 다리를 올려놓고 못 내리게 하니 사람이 힘들지....
그렇게 꼼짝 못하고 몇 시간을 있게 하니...... 다리가 저리고.... 힘이 빠지고....
그러니 걷지도 못 하겠고.... 더 나빠지지... >
항상 혈압이 낮아 조금만 앉아계시면 어지럽다고 하시는 분이라
아침마다 혈압을 재면 혈압이 낮게 나오고
그러니 간호사가 다리를 베개위에 올려놓고 계시라고 한 것을 이야기하시는 것이다.
혈압이 낮을 때 병원에서는 흔히 쓰는 방법인데......
할아버지의 불평을 들으니 더 낙심이 되고 맥이 빠진다.
내가 그동안 괜히 고생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 !! ................... 예. 알겠습니다. 간호사에게 이제 그러지 말라고 하지요. >
돌아서서 병실을 나오는 마음이 참 착잡했다.
< 내가 괜한 짓을 했구나. 그냥 대학 병원의 약을 그대로 드릴 껄..... >
그리고 대학병원의 담당의사가 조금 원망스러웠다.
더 나빠졌다고 환자나 가족에게 그렇게 실망을 줄 필요가 있었을까?
< 겉으로 보기에는 좋아진 것 같지만 검사 결과는 조금 더 나빠졌으니
약도 빠지지 말고 잘 잡수셔야 합니다. >
그냥 이렇게 주의를 주고 돌려보낼 수는 없었을까?
그러나 내 생각이 잘 못 되었다는 생각은 안 한다.
나는 평소 내가 나의 몸을 남에게 맡겨야 할 때는 가장 빨리 천국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해 달라고 나의 가족에게 당부하고 있다.
단지 내 생각이 지금 현실에 맞지 않는 것이라는 것이 내 마음을 허전하게 했다.
그리고 할머니를 내 방으로 따로 모시고 와 아들과 의논을 해 보시라고 했다.
< 처음 우리 병원에 입원을 하실 때 아드님께 말한 것처럼 우리 병원은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병원이 아닙니다. 그래서 검사나 치료 시설이 좋지가 않습니다.
나는 내가 여기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했다고 생각하는데 결과는 안 좋다고 하네요. >
< .... >
< 아드님과 의논을 하셔서 대학 병원이 추천하는 가까운 병원으로 옮기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내가 여기서 모실 수 있는 환자가 아닌 것 같습니다. >
다리를 절룩거리며 나가시는 할머니를 보니 더 마음이 아팠다.
사시는 날까지 여기서 최선을 다 해서 관리를 해드리려고 했었는데.......
먼 옛날 의과대학시절,
재미있게 읽었던 크로닌의 소설 <성채 >가 생각났다.
< 앤드루가 열차 시간에 늦지 않을까 걱정하며 발걸음을 돌렸을 때
눈앞에 펼쳐진 하늘에는 성채 모양을 한 뭉게구름이 밝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
나의 길 앞에서 나를 막고 있는 그 무엇.
이 길로 가야한다고 내 양심은 이야기하는데 나를 막고 서있는 보이지 않는 벽.
그리고 나에게 돌아서라 위협하는 그 무엇.
참 오래간만에 크로닌이 보았던 그 성채가 오늘 다시 내 눈 앞에 그리고 내 마음에
어렴풋이 보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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