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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촌닥일기 21 ( 장애 아이 )
    나의 이야기 2010. 12. 28. 09:00

    의사가 환자의 병을 알아내고 최선의 방법으로 치료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그런데 병원에 있으면서 환자만 생각하는 의사는 그래도 행복한(?) 의사라 할 수 있습니다.

    의사가 환자를 보며 환자의 빠른 완쾌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문제를 생각해야 하는 경우는 참 힘들고 어려운 일입니다.

     

    보험 적용 문제, 환자의 경제력, 도덕과 법적인 문제, 병원 경영상의 행정 문제, 직원 관리.

    그리고 의료장비의 보수와 관리. 

    개업을 한 많은 의사들이 환자를 보는 일 이외의 복잡한 문제로

    더 많은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끔 나를 정말 힘들게 하는 것은

    내가 아는 것을 환자에게 모두 알릴 수 없을 때입니다.

     

                   **************************************

     

    젊은 엄마가 젖먹이 아기를 데리고 왔습니다.

    아기가 감기 기운이 있다고 하여 간단한 시럽을 주었지만

    아기의 얼굴이 보통 아이와 조금 다릅니다.

     

    의사의 눈으로 보기에 이 아기는 분명히 선천적 기형아로 보입니다.

    얼굴의 생김새가 특징적인데 심장에서 잡음도 들리니 나의 판단이 옳음을 더 확신하게 합니다.

    내가 틀리기를 바라지만 어쩔 수가 없습니다.

    이럴 때 의사의 마음은 참 괴롭습니다.

     

    진찰을 마치고 다른 환자들처럼 엄마는 아기를 안고 대기실로 나갔지만

    나는 마음속에 갈등이 생깁니다.

    우선 엄마가 아기의 병을 알고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그러나 엄마에게 물어보기는 조금 망설여집니다.

     

    사실을 알고 있다면 아기 엄마가 가장 싫어하는 화제를 꺼내는 것이고

    다시 한번 엄마를 괴롭게 만드는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약 모르고 있다면 이 사실을 알려야 합니다.

    두 번째 아기에게도 역시 기형의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그 사실을 부모가 알아야 하고

    둘째 아이는 좀 더 깊이 생각해 보고 판단하는 부부의 결정이 있어야 합니다.

     

    < ....그러나 엄마가 실망하는 모습을 내가 어찌 볼까?

      내가 아니라도 누군가 이야기를 해 주겠지....

      그래 나도 그냥 모른 체 하자. 내가 지금 곤란한 일을 맡아야 할 의무는 없으니까.... >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대기실로 나갔습니다.

    엄마는 대기실 구석에서 아기를 품에 안고 젖을 먹이고 있었습니다.

    나를 보고 수줍은 듯 살짝 웃으며 아기 젖을 먹이는 엄마의 모습은

    또 다른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젖을 빨고 있는 아이의 얼굴은 확실히 다운 증후군의 특징적인 얼굴입니다.

     

    < ...이를 어쩌나............. 이야기를 해야할까? ...>

    결심을 하고 나왔지만 또 망설여집니다.

     

    < ....아니야. 알고 있을지도 모르니 그냥 모른 체 하자......>

    < ....그래도 혹시 모르니 물어는 보아야지..... >

     

    무척 망설여집니다.

    그래도 말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조심스럽게 물어보았습니다.

     

    < 아기가 누구를 닮았어요? >

    < 글쎄요....?????..... 아무도 안 닮은 것 같아요.>

     

    웃으며 대답하는 엄마의 얼굴이 화사합니다.

     

    그러나 내가 기대했던 대답은 아닙니다.

    나는 <........를 닮았어요.>하기를 바랐는데...

     

    내가 걱정했던 대답이라 나는 엄마처럼 밝게 웃어줄 수가 없었습니다.

     

    < 예. 그래요. >

     

    다시 진찰실로 들어와 서성이며 생각을 했습니다.

     

    < 꼭 지금 내가 이야기를 해야 할까? >

     

    몇 번을 망설이다가 또 용기를 냈습니다.

     

    < 아기는 어디서 났나요?...... 큰 병원이예요? >

    < 아니요. 개인 병원이예요. >

    <..................>

     

    아마도 산모는 아기의 기형에 대해 이야기를 못 들은 것 같습니다.

    그 표정과 대답이 너무 정상적입니다.

     

    종합 병원에서는 소아과 의사가 신생아실에서 아기를 먼저 관찰하지만

    개인 의원에서는 그냥 넘길 수도 있습니다.

     

    나는 이제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 그냥 모른 체 할 걸. 괜히 긁어서 부스럼을 만드는구나... >

     

    < 왜요? >

    내 행동이 이상했는지 엄마는 나를 쳐다보며 물었습니다.

     

    < 아니요. 그냥. 궁금해서요. >

    < ?????? >

     

    < 아기 손을 좀 볼까요?>

     

    아까 청진기로 들은 심장의 잡음과 얼굴을 보면 확실하지만

    < 혹시나 > 하며 다시 확인을 해보았습니다.

     

    역시 아기의 손은 선천적인 기형의 특징을 보여줍니다.

     

    < 병원에서 다시 오라는 이야기는 안 했나요? >

    < 예. 안 했는데요...... ??? >

     

    < 언제 한번 큰 병원에 가 보십시오. >

    < ??????? >

     

    < 아기 가슴소리가 조금 안 좋아요..... 급한 것은 아니거든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한 번 가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

     

    엄마가 놀랄 것 같아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했지만

    역시 엄마는 조금 신경이 쓰이는지 표정이 곧 굳어졌습니다. 

     

    나에게 인사를 하고 병원을 나가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내가 틀렸기를 바랐지만 너무 확실한 아기의 기형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가 않았습니다.

     

    그리고 수일 후 아기와 엄마는 다시 나를 찾아왔습니다.

     

    < 병원에 다녀왔습니다. >

    눈물을 참으며 억지로 웃는 엄마의 얼굴을 차마 볼 수가 없었습니다.

     

    < 그 날 망설이던 선생님의 마음을 알겠습니다. >

    < ........... >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듣기만 했습니다.

     

    < 감사합니다. 이야기를 해 주셔서.........>

     

    그리고 엄마는 눈물을 딱았습니다.

     

    < 그래도 우리는 이 아기를 잘 키우기로 했어요..........

      아기 아빠하고도 이제 아이는 더 안 낳기로 했구요........

      이 아기만으로도 참 힘들겠지요. >

    < ....... >

     

    < 그렇지만 한번 잘 키워 보자고 약속을 했어요.....

      우리의 운명이니까요. > 

    < 감사합니다. 선생님.>

    < ........... >

     

    돌아서는 엄마의 모습이 너무 애처롭습니다.

    그러나 따스한 내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아기가 안 좋아도 내 품에 있는 나의 아이는 이 세상에 단 하나 뿐입니다.

    현대는 인간성이 상실되어 간다고 해도 부모의 사랑은 끊어질 수 없는 것이겠죠.

     

    요즘은 산모가 대부분 아기의 성별을 출산 전에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아기를 낳은 산모가 제일 처음 물어보는 것은 무엇일까요?

     

    < 아기가 정상인가요? 발가락 손가락은 다 있지요?>

     

    이제 막 아기를 분만하고 땀에 젖은 산모가 제일 먼저 물어보는 질문입니다.

    엄마의 걱정은 아기의 건강입니다.

     

    아기에게 문제가 있다면 엄마는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서 찾습니다.

     

    < 내가 약을 잘 못 먹었나?...언제 나쁜 마음을 가졌었나?.....

      무슨 음식을 잘 못 먹은 것은 아닐까?.... >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짐이 됩니다.

     

    장애자를 둔 부모의 어려움을 우리는 모릅니다.

    상상을 할 수는 있어도 우리는 그 아픔을 모릅니다.

     

    우리가 같이 아파하고 괴로워 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그들의 아픈 상처를 더 아프게 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건강한 몸과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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