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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닥일기 37 ( 더 깊은 오지로 )나의 이야기 2010. 12. 28. 20:02
오늘은 주일입니다.
아침시간을 조금 여유있게 보내고 우리는 2 팀으로 나누어 현지 교회에 참석을 했습니다.
예배 시간에 맞추어 우리는 부지런히 갔지만 대부분 시계가 없는 그들이라
예배를 시작할 때는 교회에 몇 사람이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텅 비었던 교회가 예배를 시작하고 나니 하나 둘 들어오기 시작하여 나중에는 모인 교인이
거의 200명은 넘을 것 같았습니다.
넓은 흙바닥에 소똥을 발라 놓아 흙먼지는 별로 많지 않았지만 맨 바닥은 그래도 먼지가 많았습니다.
조금 여유가 있어 보이는 사람은 작은 나무 의자를 가지고 왔지만 대부분은 자기가 어깨에 두르고 온
담요 같은 보자기를 바닥에 쭉 펼치고 그 위에 몇 명이 같이 앉아 예배를 보았습니다.
끝나면 다시 툭툭 털어 어깨에 걸치고 갑니다.
교회 지붕은 양철 지붕이라 군데군데 파란 하늘이 보입니다.
출입구와 창은 있는데 문은 없습니다.
우리는 특별히 그곳에서 긴 나무 의자를 주어서 그곳에 앉았습니다.
아주 오래 전 우리 나라에서 마을 할아버지들이 가게 앞에 같이 앉아 담소를 나누던 긴 의자같이
생긴 것입니다.
목사님과 전도사님은 흰 가운을 입었는데 검은 피부에 흰 가운은 좀 어울리지가 않는 것 같았습니다.
교회라고 하지만 십자가, 강대상, 마이크, 피아노, 꽃꽂이 등 우리에게 익숙한 교회의 예배 용품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목사님과 전도사님은 조금 높은 곳에 나무로 만든 작은 보면대 같은 곳에 성경책을 올려놓고
예배를 인도하셨습니다.
목사님만 갖고 있는 하나 뿐인 성경책은 겉장부터 심하게 찢어져서 어딘가 없어진 장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모두가 진지하게 기도를 드리고 찬송을 부르는데 지휘자도 없고 반주도 없이
아주 멋진 화음으로 합창을 합니다.
흑인들의 선천적인 음악성(?)이 정말 놀라웠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헌물시간에는 돈보다 물건을 드리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콩, 옥수수, 조, 땅콩 같은 농작물과 빗자루같이 집에서 만든 물건이 많이 드려졌습니다.
헌물이 끝난 후 전도사가 헌물을 하나씩 들고 교인들에게 설명을 합니다.
< 이것은 콩입니다. >
< 이것은 땅콩입니다. >
이렇게 설명을 하면 누군가 손을 들고 가격을 흥정합니다.
즉석 경매를 하는 것이지요.
빗자루를 팔 때는 누군가 바닥을 쓸어 보이며 이렇게 잘 된다고 시범을 보이는 듯했습니다.
서로 웃기도 하고 가끔 서로 경쟁적으로 가격을 올리기도 하고 참 재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예배를 모두 마치고 바깥 마당으로 나오니 어제까지 우리를 도와주었던 현지 간호사 두 명이
반갑다고 인사를 했습니다.
주머니에 있던 볼펜을 그들에게 그동안 수고했다고 나누어 주고 싶었지만
그 주위에 다른 사람들이 많아 주지를 못 한 것이 조금 섭섭했습니다.
우리와 달리 오순절 교회를 간 팀은 마치 축제를 하듯이 예배의 거의 전 과정이 춤추고 노래하고
가만히 앉아있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역동적인 예배였다고 합니다.
그곳은 어디서 지원을 많이 받았는지 마이크도 있고 기타와 함께 민속악기로 정말 신나는 음악 축제를
하는 기분이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다시 집으로 돌아와 서둘러 점심을 먹고 선교사의 집을 떠나 다음 장소로 이동을 했습니다.
나는 트럭 뒤에 타고 졸면서 5시간을 달려갔습니다.
군데 군데 물이 고인 작은 저수지를 보았지만 먹을 수는 없는 물이라고 했습니다.
참 넗은 이 땅을 이렇게 놀리지 말고 옥수수라도 심으면 정말 많은 수확을 얻을 수가 있는데
하는 생각이 나니 무척 안타까웠습니다.
우리 나라 옥수수 박사님이 개발했다는 수퍼 옥수수는 보기에는 잎도 별로 없고
싱싱해 보이지도 않았는데 옥수수는 참 많이 열린다고 합니다.
이런 품종을 이 사람들이 다 이 땅에 심으면 참 잘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
우리가 지금 가는 곳은 반군이 점령하고 있는 지역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고 합니다.
보기에는 평화로운 곳이지만 가끔 반군과의 충돌도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 저녁 7시가 조금 넘었는데 주위가 무척 어두웠습니다.
불빛이라고는 전혀 없어 우리의 손전등이 유일한 빛이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집이 있을 것 같은 곳이 없습니다.
혹시 넓은 초원에 우리만 있는 것이 아닌지....
현지 목사님은 양복을 입었는데 검은 피부에 검은 양복이라
캄캄한 숲속에서 넥타이만 다니는 것 같았습니다.
목사님의 식구들인지 아이들 몇 명이 나와서 우리를 따라 다녔습니다.
우선 숙소를 만들고 저녁을 해결해야 하는데 이곳에 오늘 하루 종일 비가 와서
땅이 모두 진흙 밭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곳은 숙소가 안 좋은 곳이라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텐트를 치고 자려고
10여명이 쓸 수 있는 텐트를 서울에서부터 준비를 해 왔었습니다.
참 난감합니다.
텐트를 칠 곳은 물론 저녁을 해서 먹을 마땅한 장소도 없었습니다.
우리는 할 수 없이 라면을 끓여 찬밥과 같이 저녁을 대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행히 목사님이 작은 방을 하나 빌려 주어 여자 대원들은 그곳에서 자기로 했습니다.
비록 소똥을 바른 바닥이지만.....
남자들은 트럭 두 대를 서로 마주 대고 그 위에 텐트를 치고 트럭 짐칸에서 자기로 했습니다.
원래 내일은 약 18Km 정도를 더 들어가는 곳에 가서 진료를 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는데
이렇게 비가 오면 땅이 진흙 밭이 되어 그곳까지 차가 못 들어간답니다.
만약 비가 계속 오면 우리는 예정을 바꾸어 약 6Km를 걸어서 조금 작은 마을에 가기로 했습니다.
제발 비가 그만 그쳐서 내일 우리의 일정에 차질이 안 생기기를 기도하며 우리는 그날 일찍 자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딱딱하고 불규칙한 트럭 짐칸 바닥에 침낭을 깔고 누워 자려고 하니
한 동안 잠을 잘수가 없었습니다.
무심하게 비는 밤늦게 까지 계속 오고 ..........
한참을 뒤척이고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우리는 그렇게 그날 밤을 새워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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