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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촌닥일기 32 ( 산골 할머니의 죽음)
    나의 이야기 2010. 12. 28. 15:58

    산골은 겨울이 되면 무척 춥습니다. 바람도 많이 불고..........

    동해안에서 태백산맥을 넘어오는 바람이 매섭게 불 때가 참 많습니다.  

    그래서 겨울에는 명태를 말려서 황태를 만드는 일이 산골을 무척 바쁘게 했습니다.

     

    오래 전, 산골에 차도 많지 않고 인터넷이 생소하던 시절에는

    산골에서 나오는 특산물이 판로가 없어서 걱정이 많았었습니다.

    그래서 산지에서는 가격도 쌌지만 진짜 믿을 수 있는 정품이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신토불이 진짜 국산 웰빙식품이었죠.

     

                     *******************

     

    손주를 데리고 자주 병원에 오는 꼬부랑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혼자 걷기도 힘드신데 30분 이상을 아픈 손자를 데리고 병원까지 버스를 타고 나오셔야 하기 때문에

    보기에도 무척 힘들어 보였습니다.

    버스가 자주 있는 것도 아닌데..........

     

    할머니는 병원에 들어오시면 먼저 대기실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서 담배를 한 대 피우시며

    숨을 고르시고 휴식을 취한 후 진찰실로 들어오곤 하셨습니다.

     

    < 왜 할머니가 매일 아이를 데리고 오시나요?.......... 애 엄마는 바빠요? >

     

    청력도 조금 안 좋아서 큰소리로 물어보아야 합니다.

     

    < 개네들? ....바뻐. >

    < 새벽 같이 서울에 가면 다음 날이 되어야 오는데 하루가 멀다하고 가니 

      이놈은 내가 맡아야지 어쩌누......... 먹고 살겠다고 그 고생이니..... >

     

    아들 내외는 작은 트럭을 하나 사서 산골 특산물을 싣고 새벽 일찍 서울에 가서 물건을 판다고 합니다.

    시장에 가서 팔기도 하지만 아마 아파트 단지를 돌며 진짜 산골 특산물이라고 파는 것 같습니다.

    일종의 트럭 행상이지요.

     

    당시는 길이 안 좋을 때라 새벽 일찍 집을 떠나야 점심때쯤 서울에 도착하고 장사를 하다보면

    한 밤중에 집에 돌아오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야말로 아이들 얼굴 보기도 힘든 생활이었죠.

     

    그렇게 몇 년을 힘들게 손주를 데리고 오시던 할머니가 아들 장사가 잘 된다는 소문이 들리더니

    병원에 오시지를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이상하게 생각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차츰 할머니를 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수년이 지난 후 어느 날 병원으로 전화가 왔습니다.

     

    < 원장님인가요? >

    < 예. 그런데요. >

     

    < xx전통식품인데요. 우리 집에 좀 올 수 있나요? >

    <.............. >

    < 어머니가 많이 아픈 가 봅니다. >

     

    그 할머니의 아들입니다.

    이제는 행상이 아니라 인터넷 주문이 밀려서 트럭으로 배달을 다닙니다.

    그것도 아들이 다니는 것이 아니라 기사를 몇 명씩 두고 있는 향토기업의 회장님입니다.

     

    신토불이를 주장하는 웰빙 열풍과 이 나라의 영농정책에 따라 매년 수억씩 정부지원을 받아 지은

    공장과 판매장 때문에 이제는 이 산골의 재벌이 되었습니다.

    서울에 전문 판매장도 있다는 소리가 있습니다.

     

    < 할머니가 많이 아프신가요? >

    < 예. 밥을 며칠동안 못 먹네요. >

    < 그래요?.......... >

     

    < 돈은 걱정하지 마시고 오십시오. >

     

    내가 잠시 망설이는 것 같아 보였는지 돈은 얼마든지 주겠답니다.  

    돈을 많이 주겠다는데 싫어 할 이유는 없겠죠.

    그러나 그 소리가 나를 더 기분이 상하게 합니다.  

    그래서 안 가고 싶었지만 할머니가 괴로워하실 것 같아 차를 몰고 산길을 달려갔습니다.

     

    산골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꽤 큰 건물과 창고가 계곡을 따라 몇 개 보입니다.

    일꾼의 안내로 집에 들어가보니 할머니는 안방에 누워계십니다.

     

    < 할머니 많이 아프신가요? >

    < ............. >

     

    내 손을 잡으시는 손이 무척 야위었습니다.

    조금만 세게 잡으면 손목이 부러질 것만 같습니다.

     

    아무 말없이 내 손을 잡고 쳐다보시는 눈에 마치 눈물이 고이는 듯합니다.

    말 할 기운이 없는 것인지 말 할 것이 없는 것인지..................

    위암 말기라고 하니 지금쯤 무척 고통이 심하실 것 같은데...............

     

    할머니와 단 둘이 방에 앉아 있으려니 참 지나간 일들이 너무 허무합니다.

    내가 이렇게 섭섭한데 할머니의 심정은 어떻겠습니까?  

    우리는 아무 말없이 그냥 서로를 쳐다보며 한참을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힘들게 웃는 것 같았지만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습니다.

     

    < 할머니! 많이 아픈신가요? >

     

    베게 위로 주루룩 흐르는 눈물을 딱아드리며 다시 물어보았습니다.

     

    < ................ >

     

    역시 아무 대답없이 조금 더 웃으시는 할머니는

    < 아니야!... 고마워.. >하고 눈으로 말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마루를 건너 저쪽 방에서는 아들 친구들이 모여노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립니다.

    아마 화투판이 벌어진 것 같습니다.

    동네 청년들이 모두 모여 있겠지요.

    술도 있을 것 같고 담배 연기도 자욱할 것 같고............

    할머니가 이제 돌아가신다고 청년들이 미리 와서

    밤을 샐 준비를 다 한 것 같습니다.

     

    병원을 지켜야 하는 나는 그 곳에 오래 머물 수가 없었습니다.

     

    < 할머니! 안 아픈 주사를 놓아드릴게요.........

      이제 곧 일어나실 수 있을꺼예요. >

     

    할머니는 쓸쓸히 웃으시는 것 같았습니다.

     

    < 그래 고맙소. >

     

    눈으로 말하시는 할머니를 뒤로 하고 돌아서는 코끝이 무척 찡합니다.

     

    마루에 서서 건너방을 보니 동네 청년들이 화투판을 벌렸습니다.

    동네 아낙들은 술을 나르고 안주를 나르고 부엌도 복잡하고.......

    이미 방안은 담배 연기가 자욱합니다.

     

    < 사모님! 원장님 가시는데요! >

     

    누군가 나를 알아보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 우리 기사는 어디 갔어! 김 기사가 없으면 박 기사라도 불러야지. >

     

    어느 사이 며느리가 나와서 직원들에게 야단을 쳤습니다.

     

    며느리는 전에 내가 본 그 사람이 아닙니다.

    그 사이 너무 변해서 알아 볼 수가 없었습니다.

    피부도 하얗게 변했고 머리도, 옷도, 전혀 전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 그럼 김 과장이 갔다와! >

     

    나를 병원까지 데려다 주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나는 차를 가지고 갔고 그냥 그 집의 돈 냄새가 싫었습니다.

     

    < 아뇨. 내가 차를 가지고 왔습니다. >

     

    내가 호의를 거절하고 그냥 현관으로 나오자 아들이 따라 나왔습니다.

     

    < 왕진비는 얼마를 드려야......... >

     

    물론 아들은 많이 주겠다고 했고 주머니에 돈도 있어 보입니다.

    나도 돈을 많이 받고 싶습니다.

    그러나 나는 차 기름값만 받았습니다.

     

    < 아니 그래도 여기까지 오셨는데....... >

     

    아들이 미안해하며 나에게 돈을 주었습니다.  

    나에게 돈을 많이 주고 나면 아들은 떳떳한 마음으로 가슴이 뿌듯하겠지요.

    그러나 나는 아들이 생각하기에도 왕진비를 너무 작게 주고 미안해하는 아들을 보고 싶었습니다.  

    그건,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내 자존심을 지키는 일입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산길이 너무 씁쓸했습니다. 

    할머니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실까?

    나는 나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 

     

    그리고 며칠 후 아들이 병원으로 찾아왔습니다.  

    자신이 판매하는 토산 식품 한 박스와 함께

    할머니는 돌아가셨고 모든 절차는 다 끝났다는 소식도 전해 주었습니다.  

     

    고맙다는 그 아들의 인사가 내 귀에 왜 그렇게 슬프게 들리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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