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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촌닥일기 129 ( 의사도 뻥이 조금 있어야. )
    나의 이야기 2012. 2. 14. 16:43

     

    항상 얼굴을 찡그리고 계신 할머니가 입원을 하고 계신다.

    10여 년 전에 심근 경색이 생겨 약을 계속 복용하고 계시지만 이제는 심장 기능이 많이 떨어져서

    항상 숨이 차고 기침과 가래가 있는 할머니다.

     

    이 할머니는 아침 회진을 돌 때나 가끔 병실을 들어가 보아도 항상 침대에 쪼그리고 앉아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불평이 많으시다.

    < 밥을 적게 준다. 반찬이 너무 적다. 밥맛이 없다. 밥도 다 안 먹었는데 가지고 간다.

      소화가 안 된다. 숨이 차다. 감기에 걸렸는데 약도 안 준다. 어지러워 못 걷겠다. >

     

    이렇게 불평을 하시며 최근에는 약을 먹으면 속이 아프다고 대학병원에서 타온 약도 안 잡수시고

    식사도 거의 안 하시고 하루 종일 불평만 하신다.

    간호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사람이 안 보이면 조용하신 것 같은데 사람이 들어가면

    항상 불평을 하신다고 한다.

     

    건강에 다른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니라서 그냥 달래고 재촉을 해서 식사를 좀 하시게 하고

    약도 꼭 복용을 하시게 했지만 거의 한달 가까이 할머니에게 시달리는 간호사들이 너무 힘들어 보여

    어제 아침에는 종합 병원에 외진을 다녀오시라고 직원이 할머니를 모시고 읍으로 나갔다.

    할머니는 극빈자 혜택을 받아 모든 병원 치료가 무료이니 할머니가 원하시는 다른 큰 병원에 가셔서

    충분히 의사에게 하소연도 하시고 검사를 하고 싶으신 것이 있으시면 모두 하시고 오시라고 했다.

    할머니는 본인이 걸어 내려와서 직원의 차를 타고 종합 병원으로 가셨는데

    오후에 같이 간 직원이 병원으로 전화를 했다.

     

    < 원장님! 여기서요. 빨리 대학병원으로 가래요. >

    < 왜? >

    < 심근 경색이 심해서 빨리 안 가면 급사를 할 수도 있다는데요. >

    < ???? 아냐! 그렇지 않아! 그 할머니는 원래 그 병이 있어서 약을 먹고 있는 환자야.

      지금 이상한 것이 아니고 본래 그런 환자래두. >

    < 그래두요. 여기서는 시시각각 심장 상태가 나빠진다고 빨리 가라는데요.>

    < ............??? 그럴 리가 없는데..... >

     

    직원이 망설이고 있는 사이 종합 병원에서 119를 불러 환자를 대학병원으로 보냈다.

    그러나 서울에 있는 보호자는 급하다는 전화를 받고도 지금은 못 내려가고 저녁에나 오겠다고 한다니

    할 수없이 우리 병원 직원이 차로 두 시간 걸리는 대학병원까지 따라 갔다.

     

    그리고 보호자가 대학병원에 도착을 할 때까지 우리 직원이 밤을 새우며 환자 곁을 지키다가

    새벽에 도착한 보호자에게 환자를 인계하고 첫 차를 타고 병원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소란을 피우면 여러 사람이 놀라고 고생을 했는데 그 할머니가 오늘 보호자와 버스를 타고

    다시 병원으로 돌아왔다.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하루 밤을 자고 아침에 다시 돌아온 것이다.

     

    대학병원에서 보낸 의사소견서를 보니 역시 결과는 예상한 그대로이다.

     

    << 오래전부터 심근 경색으로 약을 복용하고 있는 환자로 금일 지역 병원에서 심전도상 심근경색

       소견이 보여 본 병원으로 응급후송 되었으나 이곳에서 실시한 심전도 상에서 보이는 소견은

       과거와 차이가 없어 새로운 소견이 아닌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래도 환자에게 며칠 입원 관찰을 권했지만 환자가 강력하게 퇴원을 원하여 다시 귀원으로

       돌려보냅니다. >>

     

    결국 할머니와 여러 사람이 이 추운 날씨에 괜히 고생을 한 것이다.

    할머니를 모시고 온 며느리를 따로 만나서 조용히 이야기를 했다.

     

    < 추운데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

    < .... >

    < 죄송합니다....

      할머니가 항상 찡그린 얼굴로 계시고 하루도 안 아프다고 하시는 날이 없었습니다. >

    < .... >

    < 너무 불평이 많으시고 다른 병원에 가시겠다고 하셔서 잠시 종합 병원에 가셔서 더 해드릴 것이

      있는 지 물어보시고 오시라고 했는데 그렇게 되었습니다. >

    < 예. 저도 알고 있습니다. >

    며느리는 고개를 숙인 채 대답을 했다.

     

    < 종합 병원 의사가 급하다고 빨리 대학병원으로 가라고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니라고

      그 분은 본래 심전도에 그렇게 나오는 환자고 그래서 지금 약을 먹고 있는 분이지

      다른 문제가 새로 생긴 것은 아니라고 했는데 큰 병원에서 129를 불러 보내는 것을

      내가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

    < 예. 그러셨겠죠. 저도 압니다........ 이게 한 두번이 아니고 벌써 10년째입니다. >

    < 큰 병원 의사들은 작은 병원 의사의 말을 듣지 않거든요. >

    < 알아요..... 항상 똑같아요....... 급하다고 해서 응급실로 가보면 항상 괜찮다는 거예요. 

      ............ 이제 좀 그만 했으면 좋겠어요. >

    < .... >

    < 버스를 타고 오면서 이번에도 역시 아무 일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찌합니까? 안 올 수도 없고......... >

    < ... >

    < 정말 언제까지 이렇게 해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

     

     

    며느리는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렸다.

    < 나도 일을 해야 하고.......... 먹고 살아야 하지 않아요. >

     

    내가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분명히 나는 아니라고 믿는데 큰 병원 의사가 맞다 하면 거부할 수가 없는 것이 작은 병원의 의사다

    작은 병원의사들도 얼마 전까지 큰 병원에서 큰 소리를 치던 의사였지만

    지금은 첨단 장비에서 얻는 검사 결과가 없고 큰 병원 의사들은 그 결과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의 일에 100% 장담 할 수 있는 일은 없는 것이고 의외라는 것이 항상 있기 때문에

    작은 병원 의사는 약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큰 병원 의사들은 작은 병원 의사들의 의견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비록 자신의 선배요 과거 자신을 가르쳤던 사람이지만 지금은 자신이 더 나은 의사라는 생각이 있다.

    일종의 교만이고 자만심이지만 그들이 대우를 받는 이유가 자신의 실력보다

    그들이 소속된 병원의 첨단 검사장비 때문이라는 것을 모른다.

     

    그러다보니 이런 의사들이 작은 병원에 오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놀라서 질겁하고

    여러 사람들을 고생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큰 병원에 있던 의사들이 작은 병원에서 흔히 저지르는 오진이다.

    몰라서 오진하는 것이 아니라 아는 것이 너무 많아 겁을 먹고 저지르는 오진이다.

     

     

    우리 나라의 의학이 발달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의료제도가 의학의 발달을 따라 가지 못 하니 첨단 장비의 도움에 의지해서

    환자를 보던 의사들이 장비가 없는 작은 병원에서는 무능한 의사가 되는 일이 생긴다.  

    결국 첨단 장비에 의존하던 의사들은 그런 장비가 없으면 무능한 돌팔이가 될 수밖에 없다.

     

    자신이 전문으로 하던 질병이 아닌 다른 질병의 환자가 오면 돌팔이가 되고

    큰 병원에서 항상 받아보던 첨단 장비의 검사 결과가 없어서 돌팔이가 되고

    모르면 잠시 물어 볼 동료 의사도 없고 자신의 약한 부분에 도움을 줄 의사가 없어서

    작은 병원에서는 어쩔 수 없이 돌팔이가 되고 만다.

     

    우리나라 의료제도는 참 많은 돌팔이들을 만들고 있다.

    그래서 요즘 의사들은 조금 뻥이 있어야 유명해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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