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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촌닥일기 8 ( 촌닥은 싫어요)
    나의 이야기 2010. 12. 27. 15:20

    유난히 바람이 차갑던 초 겨울 어느 날,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할머니를 업고 진찰실로 들어 왔습니다.

     

    < 입원을 시켜주십시요.>

    <  ????... >

     

    이유도 없이 무조건 입원을 원하는 아들은 무척 지쳐보였습니다.

     

    아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얼마 전부터 할머니가 허리가 아파 못 걷는다고 하셔서

    다른 병원에 입원을 하셨다가 퇴원을 하신지 며칠이 안 되었는데 또 입원을 하시겠다고 하신답니다. 

    아들의 축 늘어진 어깨와 지친 얼굴이 무척 힘들어 보였습니다.

     

    이유없이 어린아이처럼 그냥 보채는 늙으신 어머니를 더 이상 달랠 수가 없어

    아들은 그냥 무작정 병원으로 업고 온 것 같았습니다.

     

     

    < 할머니, 입원하셔서 주사 맞으시고 물리치료를 하시려구요? >

     

    병원에서야 입원환자를 거부할 이유는 없지만 순박해 보이는 아들의 모습이 너무 지쳐 보여서

    조금 시간을 끌어 보았습니다.

     

    < ............ 찜질은 집에서도 해.>

    할머니도 마음이 편하시지는 않으신 것 같았습니다.

     

    < 할머니!... 입원을 하셔도 병원에서 주사를 놓아드리고 찜질을 해 드리는 것뿐인데요. >

     

    < 나도 알아......... 전에도 입원해 봐서 나도 안다구.....>

     

    그래서 조금 더 할머니를 달래 보았습니다.

     

    < 찜질은 집에서 그냥 하시구요. 주사는 제가 집에 가서 놓아드리면 안 될까요? >

     

    <...............>

     

    의외의 질문을 들으셨는지 할머니는 잠시 주춤하시며 생각을 하시는 듯했습니다.

     

    < 집이 여기서 머세요? >

    <.............. >

     

    할머니는 다시 나를 쳐다보시더니 나에게 다짐을 했습니다.

     

    < 정말 매일 집에 와서 주사를 놓아줄꺼야? >

     

    < 예, 그렇게 해 드릴께요.>

     

    할머니는 못 믿겠다는 듯 다시 나에게 다짐을 받으시고

     

    < 입원을 해도 병원에서 해 주는 것도 없더라. >

     

    하시며 다시 아들에게 업히어 진찰실을 나가셨습니다.

     

    잠시 후 눈에 익은 젊은 애기 엄마가 들어와서 인사를 했습니다.

     

    < 선생님 우리 어머니 입원을 안 시켜주셔서 감사합니다.>

    <..............>

     

    < 입원을 안 시켜준다고 너무 화를 내셔서 모시고 왔지만 우리 형편도 말이 아니예요.>

     

    애기 엄마의 눈물이 그 동안의 마음 고생을 말해 주는 듯했습니다.

     

    그 날부터 나는 퇴근길에 할머니의 집에 들려 주사를 놓아드렸습니다.  

    노인은 갈 때마다 나에게 사탕도 주시고 어느 때는 과일도 내 주머니에 넣어 주셨습니다.

     

    어느 날은 허리춤에서 꼬깃 꼬깃 접은 만원을 꺼내 주시기도 했지만 다시 돌려 드리기도 했습니다.

     

    < 우리 며느리가 착하지................>

    < 그렇지요. >

     

    < 요즘 그런 며느리 없어. 내가 화가 나서 그런거야............

      자기 자식이 아프다고 하면 빚을 내서라도 입원을 시켰을 것 아냐? >

     

    할머니는 아들이 돈이 없는 것을 알지만 화가 나서 투정을 부렸다고 하셨습니다.

     

    한 달이 가까워지면서 할머니의 통증은 차츰 좋아지고

    그래서 나의 방문 빈도도 차츰 줄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저녁이었습니다.

    그 날은 집에 할머니 혼자 계셨습니다.

     

    그날도 역시 주사를 놓아드리고 일어서려는데 할머니가 내 팔을 잡으셨습니다.

     

    < 내 소원 좀 들어주고 가.>

     

    < ???? >

     

    할머니의 표정이 너무 간절하여 나는 일어섰다가 다시 앉았습니다.

     

    < 말씀해 보세요. 무슨 일이 있나요? >

    <.........>

     

    잠시 망설이던 할머니가 어렵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 나 좀 꼭 안아주고 가.>

     

    너무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잠시 할 말을 잊었습니다.

     

    < 나 좀 안아줘. 선상님이 내 맘에 꼭 들어.>

     

    두 손을 벌리시고 나를 보시는 할머니를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사세요.>하며

    한번 꼭 안아드리고 집을 나왔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잠시 착각에 빠졌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 네가 내 마음에 꼭 든다..... 내 품에 안겨라.>

     

    물론 착각이겠지요.

    나는 항상 하나님께 불만이 있었으니까요.

     

    < 촌닥은 싫어요. 나도 서울 닥이 되고 싶어요. >

      

    그리고 그 때까지 나는 내가 할머니를 안아 드리고 할머니 소원을 들어드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아니더군요.

     

    할머니께서 먼저 자신의 마음을 활짝 열고 그 가슴으로 나를 안아 주신 것입니다.

     

    나에게 열어 주신 그 마음의 사랑이 내가 그날 받은 커다란 선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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