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촌닥일기 97 ( 치매, 알지만 어쩔 수 없는.. )

촌닥 2010. 12. 30. 19:40

   

아침 회진을 돌고 잠시 휴게실 소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창밖의 넓은 정원을 바라봅니다.  

무성했던 푸른 잎이 어느새 낙엽이 되어 소리없이 떨어져 쌓이는 정원에는 마지막 남은 노란 은행잎이

너무 애처롭게 바람에 흔들리고 있습니다.

세월이 가는 것이 이렇게 쓸쓸하고 안타까운 것인지 .......

나도 이제 가는 세월을 서러워해야 할 나이가 되었나봅니다.  

TV 화면에서는 핸드폰으로 문자 놀이를 하는 젊은 아이들의 모습이 참 즐거워 보입니다.

 

< 아이들이 문자를 자주 보내요? >

 

아침 회진을 돌고 같이 커피를 마시던 동료 여의사가 갑자기 물어보았습니다.  

개업을 해서 의사 생활을 오래하시다가 이제는 은퇴를 하신 분인데 남편께서 치매에 걸려

아내도 못 알아보고 자녀들과 손주들에게 많은 피해가 되니 얼마 전부터 두 분이 이곳으로 내려와

같이 기숙사 생활을 하십니다.

 

< 저는 문자를 보낼 수가 없지요. >

< 아.... 그렇구나. >

 

나는 아이들이 모두 미국에 있다는 것을 잠시 잊으셨나 봅니다.

 

< 저는 아이들이 모두 서울에 있는데 ...........그래도 연락이 없어요. >

< ............ >

< 내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사는데...............아이들이 너무 모르는 것 같아요.... >

 

자녀들에게 무척 섭섭한 마음이 있는 것 같습니다.

 

처음 그 분을 보았을 때 나는 그 분이 환자인 줄 알았었습니다.

너무 지치고 힘들어 보이는 모습에서 여의사의 당당함(?)은 전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시험삼아 몇 주를 같이 근무해 보시고 다시 서울로 올라갔을 때 자녀들이 부모님의 모습이 많이

밝아진 것을 보고 이곳에 부모가 같이 내려와 있는 것을 허락(?)하여 두 분이 기숙사에 짐을 풀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아파트에서 자녀 부부와 손주들과 같이 살며 어쩔 수 없이 은둔(?) 생활을 하시다가

이제 자신의 아파트를 자녀부부에게 넘겨주시고 자유를 얻으신 것입니다.

 

이제 엉뚱한 일로 손주들과 다투는 할아버지를 보는 괴로움도 없고 손주와 사위의 눈치를 보며

괴로워하는 딸을 보는 아픔도 없습니다.

이제 저녁에는 산책도 같이 하시고 낮에는 잠깐 정원도 거닐면서 자유롭게 생활을 하시다 보니

두 분이 무척 밝아지셨습니다.  

남편은 자기는 장가를 안 가서 아직 부인이 없다며 왜 엄마는 나를 장가보낼 생각을 안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어릴 때 살던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매일 짐을 싸십니다.

 

이런 남편과 같이 매일 시간을 보내는 어려움이 있지만 남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으니 마음은

전보다 편하신 듯합니다. 그리고 자녀와 손주들에게 다시 좋은 환경을 돌려주었다는 것이

참 기쁘실 것이라 생각했었습니다.

 

< 자기들이 없으면 내가 왜 이렇게 살겠어요? >

< ............ >

< 아........ 또 눈물이 나는군요......... 괜히 이야기를 꺼내 가지구............ 미안합니다. >

 

눈물을 닦으시며 복도 저 쪽으로 가시는 그 분의 뒷 모습이 너무 작아 보였습니다.

잘 적응하시고 계신 줄 알았는데...... 

그동안 마음속에 쌓아 두었던 서러움과 외로움이 참 많았나 봅니다.

나는 지금 작은 틈새로 그 실체를 아주 조금 본 것뿐입니다.

 

치매라는 병이 참 주위 사람들을 힘들게 합니다.  

회진을 하며 식사를 하셨느냐고 물으면 안 먹었다고 하시는 분이 많습니다.

방금 상을 치웠는데 배가 고프다고 밥을 달라고 하시는 분도 계십니다.

아들 집에서 계신 분이라면 시어머니 밥도 안 준다고 며느리와 딸이 싸움이 나겠지요.

 

어느 날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왔습니다.

너무 지친 며느리의 모습이 그동안의 마음고생을 짐작하게 합니다.  

배회가 심하여 집을 잃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고 동네를 다니며 온갖 일을 저질러 놓으니

동네에서 제발 집에서 못 나오게 하라고 원성이 높다고 합니다.

 

< 내가 오죽하면 이렇게 왔겠습니까? ........나도 돈이 아까운 줄 알지만...........

  우선 사람이 살아야지요. >

 

잠시 며느리가 밖으로 나간 사이 딸에게 물어보았습니다.

 

< 언제부터 할머니가 이상하게 보이셨나요? >

<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요.... >

 

딸은 할머니와 같이 살지를 않아 잘 모르는 듯 합니다.

그리고 딸은 조금 불만에 찬 듯한 표정이었습니다.  

모든 입원 수속을 마치고 할머니가 병실로 가신 후 며느리와 딸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그 날 저녁 회진을 돌며 할머니의 방으로 갔더니 할머니가 안 계십니다.

 

< 오늘 입원하신 할머니는 안 보이네? >

< 그냥 퇴원을 하셨어요. >

< 왜 ??? >

< 조금 전에 딸이 와서 데리고 갔는데요. >

 

입원을 시키고 돌아갔던 딸이 조금 전에 다시 와서 할머니를 모시고 갔답니다.

딸과 며느리의 갈등이 시작된 것이지요.

그 사이에서 아들의 마음 고생도 이제 시작이 된 것입니다.

 

치매 환자를 모시는 것은 경험을 해 본 사람만 알 수가 있습니다.

또, 환자에 따라 모두 같은 증세를 보이는 것도 아닙니다.

전혀 전과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지요.

내가 알고 있던 어머니와 아버지가 아닌 것입니다.

 

낮에는 조용히 멀쩡하던 사람이 밤에는 소리를 지르며 온갖 욕을 하며 모든 환자를 못 자게 하는

환자도 있고 대변을 보고 가지고 놀다가 옆 사람들에게 마구 던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아침이 되면 모두 잊어버리지요. 그리고 조용히 깊은 잠을 잡니다.

 

매일 나를 보면서도 누구시냐고, 어디서 왔냐고 묻는 할머니가 계십니다.

면회를 온 아들에게 의사는 한 번도 보지를 못 했다고 하니 순진한(?) 아들은 내가 한 번도

할머니를 안 돌아보면서 매일 회진을 도는 것처럼 거짓말을 한다고 오히려 나를 의심합니다.

그러나 사실 할머니는 아들이 다녀간 것도 기억을 못 하는데.... 

그래도 아들은 자신의 어머니가 치매라는 것을 부인하고 싶겠지요.

그러나 사실을 인정을 해야 합니다.

 

가끔 병원에 입원을 하면 치매가 좋아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꿈같은 이야기이지요.  

증상이 완화될 수는 있어도 치료는 안 되는 것이 치매입니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 나빠지는 것이 맞는 것입니다.

 

의사인 부인이 치매에 걸린 남편 때문에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병이 바로 치매라는 것입니다.

노력을 안 하는 것도 아니고 무엇을 몰라서 그러는 것도 아니고 돈이 없어서 그러는 것도 아닙니다.  

환자인 것을 알지만 아직은 어쩔 수 없는 것. 그래서 우리가 아는 것만큼 서로를 힘들게 하지

않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치매 환자로 인하여 가족 사이에 갈등이 생기고 싸움이 생기는 것은 자신이 현명하고 옳다고 착각하는

어리석은 사람들 때문입니다.

 

내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것이 더 많고

세상은 내가 아는 것보다 더 빨리 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