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닥일기 57 ( 마지막 남은 정열을 다해 )
내가 쓰던 장비를 모두 가지고 내려와서 건물 곳곳에 배치를 하고 나니 조금 병원같은 생각이 듭니다.
학교로 쓰던 건물이라 아무리 리모델링을 했다 해도 건물의 구조가 병원으로 쓰기에는 불편한 곳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도 내가 며칠 전까지 잘 쓰던 물건들을 가지고 온 것이라 우선 환자를 보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입원환자가 하나 둘씩 늘어가면서 차츰 일손이 부족하게 됩니다.
낮 시간에도 직원이 부족한데 밤에는 더 심하여 적은 인원으로 감당하기가 무척 벅찹니다.
그러나 시골이라고 직원을 구하는 것이 보통 힘든 것이 아닙니다.
전문직이 아니면 그래도 조금 나은데 전문직은 모두가 젊은 사람들이라 아무리 광고를 내도
사람을 구할 수가 없습니다.
가까운 도시에서 30분정도 차를 타고 오는 시골인데도 봉급을 더 주고 출퇴근을 책임져 준다해도
젊은이들은 도시를 떠나 일을 하는 것이 싫은 것 같습니다.
시골일수록 노인이 더 많고 일손이 더 필요한데....
입원을 하고 계신 분들이 모두 노인들이라 많은 환자들이 식사를 스스로 못 하시고
대 소변을 가리지 못 하여 기저귀를 차고 계시니 일손이 많이 필요합니다.
간호사가 모자라 환자 처치하기도 바쁜데 식사 때가 되면 전 직원이 병실에 들어가
환자에게 식사를 먹여드려야 합니다.
그래서 식사 시간이 되면 병원 이사장 부부와 두 아들까지 모두 동원이 되어
환자 식사를 보조해 드립니다.
간병인이 있지만 역시 낮에도 손이 딸리고 밤에는 밤새 기저귀를 갈아드리다 보면 날이 샙니다.
병원장이라고 편하게 쉬고 있을 분위기가 아니니 병실에서 호출이 있는데 받는 사람이 없으면
나라도 가 볼 수밖에 없습니다.
혹시 급한 일일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어디가 아프다고 하시는 경우는 다행입니다.
가끔 치매에 걸린 환자는 변을 보고 손으로 만져서 여기 저기 엉망을 만들어 놓고 옆에 있는 환자는
냄새난다고 마구 욕을 하고......
너무 황당하고 어이가 없는 모습에 어찌해야 좋을지 도저히 혼자서는 감당을 못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간단한 것은 혼자 정리를 하고 나오지만 이렇게 하다가는 직원 모두가 앓아누울 것만 같습니다.
밤 당직을 할 간호사가 없던 어느 날, 수간호사가 오늘 밤 자기가 당직을 서겠다고
오후에 일찍 숙소로 들어가 잠을 잤습니다.
그런데 저녁에 내려온 수간호사는 무척 힘들어 보였습니다.
< 어디 아파요?...... 안 좋아 보이네요? >
< 몸살이 있는 것 같아요. >
너무 피곤한 몸이니 몸살이 생길 만도 합니다.
아픈 몸으로 밤 근무를 어떻게 할지 걱정이 되지만 지금은 대신해 줄 사람도 없습니다.
나도 밤늦게 숙소로 들어가 잠을 자다가 눈을 떠보니 2시가 조금 넘었습니다.
병실이 걱정이 되어 일어나 병실로 내려갔더니 역시 아무도 지키는 사람이 없습니다.
모두가 피곤하니 이해는 하지만 그래도 환자들이 있는데....
간호사 실에 조금 앉아서 있다 보니 환자를 책임지고 있는 몸이라 이렇게 하루 하루 보내는 것이
너무 불안합니다.
< 내가 잘 못 생각한 것일까?... 더 쉽고 편한 곳도 많은데.... >
그냥 모든 조직이 잘 되어 있는 기존의 병원에서 일하는 것이 안전한 것인데
내가 잘 못 생각을 한 것 같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병원 수입이 지출을 못 따라가서 계속 적자를 보고 있는데도 조금도 실망하거나
초조해하지 않고 몇 달째 직원들 봉급을 하루도 밀리지 않고 정산해 주는 이사장 부부가
나를 속이고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벌써 일억이 넘는 운영비를 채워 넣은 것 같은데............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며 간호사 실에 앉아 있는데 부스럭 소리가 나더니 누군가 가까이 오는
인기척이 났습니다.
< 어? 원장님......... >
행정 원장으로 일을 하는 이사장 부인이 팔에 수액을 꼽고 내 앞으로 왔습니다.
< 아니 왜 안 주무시고 내려오셨어요? >
< 예. 그냥 잠이 깼습니다. ... 그런데 어디 아프시나요? >
이사장 부인은 무척 피곤하고 힘들어 보여 꼭 어디가 많이 아픈 사람 같이 보였습니다.
< 아니요. 그냥 피곤한 것 같아서요....... 수 간호사가 너무 힘들어 해서 내가 올려 보냈습니다. >
병원 운영자가 이렇게 직원들과 같이 직접 열심히 일을 하는 병원도 흔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 들어가 조금 쉬다가 나오세요. 내가 잠시 지키고 있을께요. >
< 아닙니다. 원장님이 쉬셔야지요. 내일 또 환자를 보셔야 하는데.... >
이사장 부인은 많이 힘들어 보이는데 괜찮다며 굳이 나에게 쉬라고 합니다.
나는 내일 또 하루 종일 병원을 지켜야하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그냥 올라가 쉬는 것이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병실을 지키는 것이 행정원장에게는 더 큰 마음의 부담이 될 것 같아 그냥 올라왔습니다.
이렇게 처음 세 달은 모든 직원이 너무 고생을 했습니다.
따로 너의 일 나의 일이 있는 것이 아니고 누구나 일이 눈에 보이면 먼저 본 사람이 처리를 했습니다.
나도 할머니의 기저귀를 갈아드리고 식사를 도와드려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정말 모든 직원들이 하나같이 열심히 일을 하면서 차츰 환자도 늘어가고 직원들도 늘어갑니다.
모두가 나의 일, 남의 일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해 주는 것이 너무 고맙습니다.
가끔 동네에서 올라오신 노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동네에서도 많은 걱정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 이런 시골에 병원을 한다니 참 이상한 사람들이라 했지요.
얼마나 버틸까 했는데 이렇게 잘 하고 있으니 참 좋소. >
동네 노인들도 마을에 큰 병원이 생기는 것이 한편은 반갑지만 얼마나 오래 견딜까 하고
걱정을 했다고 합니다.
이제 직원들도 많이 보충이 되어서 운영자나 내가 환자의 시중을 들어야 하는 일은 없습니다.
아직도 수입과 지출이 안 맞아 적자를 보는 것 같으나 매일 나아지고 있는 것에 희망을 갖고
항상 기쁘게 일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 나에게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이제는 부근에도 좋은 소문이 나서 다른 병원에서 퇴원을 하여 우리 병원으로 오겠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안 된다고 합니다.
이미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를 빼앗으려고 이 병원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운영자의 생각이
무척 참신해 보입니다.
집에서 아무 도움도 받지 못 하고 너무 힘들게 사시는 노인들을 찾아서 모시는 것이 우리 병원의
설립 목표라고 합니다.
시골에 혼자 사시는 노인 분들은 몸도 아프지만 마음도 아픕니다.
그 분들이 사는 곳을 가보면 이곳이 정말 우리나라인가 하는 의심이 생기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차라리 마당 한 구석에서 자고 있는 X 개가 더 깨끗하고 좋은 환경에서 사는 것 같습니다.
이제 이런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지나간 우리의 과거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오늘 우리나라 어느 시골에서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이야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