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촌닥일기 2 ( 농약 먹인 아이)

촌닥 2010. 12. 27. 11:48

내가 나 자신에게 물어봅니다.

 

< 의사로 살면서 죽을 사람을 내가 살렸다고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 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

 

그러나 섭섭하게도 개업을 하고 지금까지 20년 동안 <그 사람은 나 때문에 살았다.>하고

자신있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단지 나 때문에 쉽게 덜 고생하고 치료될 수가 있었던 사람은 있었고

큰 장애가 작은 장애로 끝날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오히려

<내가 이렇게 했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혹시 다른 의사라면 나보다 더 나은 치료를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사실 더 많습니다.

아직도 인간의 병은 참 복잡하고 모르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꼭 한 사람, 내가 자신있게 <그 사람은 내가 살렸다.>하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이 인턴 시절 한 사람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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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 도시에 있는 병원에서 소아과 인턴을 돌고 있을 때입니다.

저녁 8시경 응급실에 이제 한 살이 조금 넘은 아기가 농약을 먹고 왔습니다.

위세척을 마치고 기관 삽입을 하고 인공호흡으로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너무 작은 아이는

이제 얼마나 살 수 있을지 아무도 모릅니다.

물론 인공호흡 백을 잡고 있는 사람이 손을 놓으면 바로 숨을 거두겠지만

인공호흡을 계속 한다고 분명히 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심장 마비가 언제든지 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아기의 운명은 하늘에 맡기는 수밖에 없습니다.

 

아기에게 엄마가 농약을 먹였답니다.

아기가 기침을 해서 기침약을 숟갈로 먹였는데 그것이 농약이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시골 농촌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지요.

집에 어디든 쓰다 남은 농약이 있고 감기 약(시럽)도 같은 색의 병에 들어 있으니까요.

엄마는 응급실 구석에 울다가 지쳐서 쓰러져 있습니다.

귀한 손자인지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여러 사람들이 응급실 밖에서

이곳을 쳐다보며 울고 있었습니다.

 

<먼저 올라가서 2시간만 자고 내려와! 어차피 밤을 새워야 할지도 모르니까.>

1년 차 수련의가 인공호흡 백을 손에 쥐고 규칙적으로 누르며 나에게 2시간의 휴식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오늘 밤은 꼬박 새워야 할지도 모릅니다.

다행히(?) 아기가 일찍 사망하면 빨리 쉴 수도 있겠지만.

 

그날 밤, 나는 10시경부터 응급실 옆 작은 방에서

의식이 없이 침대에 묶여 있는 아이와 밤을 새웠습니다.

두 손으로 번갈아 가며 인공호흡 백을 눌러주고 5분에 한 번씩 아트로핀(해독제)을 주사하고

가끔 아이의 심장 소리를 들어보고 아이의 눈동자를 검사해 보며 혼자 아이를 돌보고 있었습니다.

 

12시가 지나면서 손이 아파옵니다. 차츰 손의 감각이 없어지고 내 손이 기계처럼 움직입니다.

잠시 쉬고 싶지만 내가 쉬면 아이는 죽는 것입니다.

 

좁은 방에 아이와 나만이 있고 아무 소리도 안 들립니다.

너무 조용한 것이 오히려 두렵습니다.

창밖이 어두운 것을 보니 이제 모든 도시가 잠자고 있는 듯합니다.

 

<내가 이 아이를 살릴 수 있을까?

내 손에 힘이 떨어져 더 이상 인공호흡을 못 하여 아이가 죽는 것을 보면 어쩌나.

나는 팔 힘이 남들보다 약한 자인데.

해독제를 너무 많이 주는 것은 아닐까? 심장 마비가 생기면 어쩌나.

이런 경우를 좀 더 공부를 했어야 하는데. >

여러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갑니다.

 

새벽 3-4시가 되면서 이제 1년차 전공의가 내려와 교대해 주기를 기다렸으나

그는 잠이 푹 들어버렸는지 소식이 없습니다.

이제 소변도 보고 싶은데.

아이가 빨리 깨어났으면 좋겠는데 아이는 아무 반응이 없습니다.

자꾸 인공호흡을 하는 손이 무감각해지고 힘이 빠집니다.

가끔 문을 살짝 열고 방안의 눈치를 살피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내가 고생을 한다고 생각을 하셨는지 어느 사이 살며시 들어와서

피로회복제 한 병을 내 곁에 두고 나가셨습니다.

 

이제 농약을 먹은 지 10시간이 가까워 옵니다.

위험한 고비는 넘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 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납니다.

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손에 다시 기운이 나는 듯합니다.

 

<그래 한번 해보자.>

다시 힘을 내고 정신을 차려 해독제의 용량을 조절하여 시간에 맞추어

열심히 주사를 놓고 인공호흡 백을 눌렀습니다.

 

이제 창밖이 조금 환해집니다. 5시가 넘은 것이 확실합니다.

아이를 보니 눈동자의 모양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이제 아이가 눈을 뜨고 나를 보는 것 같습니다.

기관 삽입으로 말은 못 하지만 나를 보고 있는 눈이 무엇인가를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조심스럽게 호흡기 백의 감각을 느껴봅니다.

약하게 아이의 호흡이 느껴집니다.

 

<그래. 이제 자기 호흡이 돌아오는구나. >

차츰 내가 누르는 호흡기의 강도와 회수를 줄여나갑니다.

그리고 십 여분 후 확실히 아이의 호흡이 있다고 생각이 들 때 아이와 눈을 맞추었습니다.

 

 <이거 빼 줄까? 엄마 불러줄까? >

물론 아이는 말을 못 합니다.

그러나 그 표정이 이제 기관삽입관을 빼도 되겠다는 확신을 나에게 주었습니다.

 

 < 그래 이제 빼줄게.>

조심스럽게 주위를 정리하고 아이의 입에 고정 시킨 모든 것을 하나 하나 제거하고

마지막으로 기관에서 관을 빼자마자 아이는 큰 소리로 <으앙!> 하고 울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병실 문이 열리며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몇 사람이 뛰어 들어왔습니다.

나는 잠시 병실 구석에 서있었습니다.

아이를 안고 우는 식구들은 내가 거기 있다는 것을 모르는 듯 했습니다.

 

지친 몸으로 병실을 나오는데 저쪽 복도 끝에 아이의 엄마가 쓰러져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밤새 얼마나 울었을까? 그 마음을 이제 아이를 낳아 키워보니 더 깊이 알 것 같습니다.

 

그날 아침 그 여명의 순간은 나에게 또 다른 시작이었습니다.

이제 그 아이가 잘 컸다면 30이 넘은 청년이 되었겠지요.

결혼을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후유증 없이 잘 살고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