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촌닥일기 17 ( 어느 의사 이야기 )

촌닥 2010. 12. 27. 20:02

처음 의사가 되었을 때,

나는 모든 분야에서 모르는 것이 없는 권위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인턴을 하면서 내가 너무 모른다는 것을 알았고

전공의 생활을 하면서 의사는 공부하는 것이 끝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는 항상 열심히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동안 참 많은 실수도 했고 감추고 싶은 일도 너무 많았습니다.

 

어느 때는 내가 옳다고 생각하고 자신있게 처치를 했는데 나중에 내가 잘 못 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환자에게도 미안하고 나도 너무 속이 상할 때도 있었고  

알고 보니 아주 간단한 처치였는데 내가 몰라서 환자를 고생시키며 먼 곳까지 가게 만든 경우도

있었습니다.

 

또, 좀 더 일찍 결단을 내렸어야 했는데 내 판단이 늦어 시간을 지체한 경우는

내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경우가 아마 더 많았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그 일을 다시 생각하면 서운하고 안타까울 때가 참 많습니다.

 

< 나는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더 많다.>

< 나는 신이 아니고 사람일 뿐이다. >

< 의사는 환자 자신의 치료능력을 도와줄 뿐 치료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다. >

< 죽을 때까지 나는 공부하고 배워야 한다.>

 

수없이 생각하고 다짐하지만

나에게 오는 모든 환자를 완치시키고 싶은 의사의 욕심이 자주 나를 속상하게 하곤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나를 슬프게 하는 것은

의사의 양심으로 그냥 모른 체하기에는 너무 심한

어떤 양심 없는 의사의 행동을 알게 되었을 때입니다.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났는데 굳이 다시 밝혀야 할까요?

오래 전에 조용히 지나간 일을 이제 다시 들추어 무슨 이득이 있을까요?

 

너는 항상 잘 했냐? 너 혼자 양심 있는 척 하지 마라!

참 망설여지는 일이고 오랫동안 내 마음속에서 나를 괴롭히던 갈등이었기에

이제 다시 생각하는 것조차 싫습니다.

그냥 다시 덮어두고 싶습니다.

 

그러나,

혹시 지금도 우리가 무심히 지나쳐 버리는 피해자가 있지는 않을까?  

이제는 없기를 바라는데 혹시,

정말 혹시 말입니다.

 

그래서 떨리는 마음으로

내 자신의 치부이기도 한 내가 아는 문제 의사의 잘못을 꺼내려고 합니다.

 

부디,

지금도 열심히 환자를 위해 애쓰는 대부분의 평범한 의사들에게

누가 되지 않기를 바라며...

 

또, 이 글을 읽는 분들이 많은 의사가 이렇다고 오해하지 않으시기를 바라며.......

 

            ******************************************

 

내가 근무하던 부대의 하사관의 부인이 아기를 출산하려고 읍에 있는 병원에 갔습니다.  

정상 분만을 원했지만 아기가 커서 지금 수술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수술 중에 출혈이 심하여 피가 필요하니 헌혈을 할 사병 몇 명을 데리고

빨리 병원으로 나오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그 하사관과 같은 중대 사병들 중에 지원자가 많아 그들 중에 몇 명을 뽑아 급히 읍으로 나갔습니다.

 

읍 병원은 올해 근처 이동외과 병원에서 만기 제대한 군의관이 새로 개업을 한 곳입니다.

나는 환자 때문에 가끔 그 이동외과 병원에 가서 그 원장을 보았지만

그는 나를 잘 모르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의 부인은 그가 근무하던 군 병원의 간호장교였다고 들었습니다.

 

그 병원에 도착하니 군 병원에서 군의관들이 많이 나와 있었습니다.

같이 근무하던 군의관이 개업을 했으니 열심히 도와주는 것이지요.

 

더운 날, 땀을 뻘뻘 흘리며 수술을 하는 사람들을 보니 참 힘들어 보였습니다.

다행히 군의관들의 도움으로 수혈도 하고 위험한 순간은 지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갓난아기는 수술 방 한 구석에서 원장 부인이 돌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기가 둘입니다. 쌍둥이죠.

그래서 한 아기는 급히 준비한 담요에 싸여있었습니다.

 

< 아이가 커서 수술을 한다고 들었는데??....... 내가 잘 못 들었나? >

 

혼자 이상하다고 생각을 했지만 내가 잘 못 들었나보다 했습니다.

또, 쌍둥이면 정상 분만이 힘들고 당연히 수술을 해야 하는 것인가 보다 했습니다.

 

나는 병원 수술방 앞에서 수술이 무사히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수술 방 창문을 열고 어느 군의관이 열심히 그 원장에게 지시를 내렸습니다.

아마 그런 수술을 많이 해본 경험자 같았습니다.

 

< 예. 예. 그래요. 그것하고 이쪽하고 꿰매세요.... 예. 그렇게........맞아요. >

< 아니요. 거기는 두 겹으로 해야죠. >

< 그건 건드리지 마세요. 그냥 두어도 돼요. >

 

그 군의관이 지시하는 대로 원장은 열심히 땀을 흘리며 수술을 했습니다.

그렇게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힘들었던 수술은 무사히 끝났습니다.

 

그날은 무척 더운 초여름 날이라 의사도 고생을 했지만

환자와 아기가 모두 무사한 것이 다행이었습니다.

 

나는 수술을 마치고 원장실에서 땀을 닦으며 냉수를 마시는 그 원장에게 갔습니다.

 

< 수고 하셨습니다. 산모 부대 군의관입니다. >

 

먼저 인사를 하고 수술 실력이 대단하다고 조금 추켜세웠습니다.

 

< 언제 그런 수술을 다 해 보셨습니까? >

 

의대를 졸업하고 바로 입대한 내 눈에 그는 참 대단한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내가 알기로 그 원장도 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입대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나는 지금 수술을 하라고 다 준비를 해 주어도 무서워서 못 할 수술인데

혼자서 준비를 하고 끝까지 수술을 마친 그가 참 위대하게 보였습니다.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소파에 기대앉아서 찬 물을 주욱 마시고 있는

그 원장의 땀에 젖은 모습이 내 눈에는 참 멋있게 보였습니다.

 

< 수술?....... 처음 해 보는 거야! >

< 예??????>

 

너무 뜻밖의 대답이었습니다.

 

< 전에 군 병원에 있을 때 몇 번 보았지.........>

너무 당연하게 대답하는 그가 참 어이가 없었습니다.

 

< 이럴 수가!!!!!! ... 군부대에서? ....자기가 해 본 것이 아니라 남이 하는 것을 구경하고?...>

 

군 병원에서 제왕 절개수술을 하는 것을 몇 번 보고 지금 자신이 직접 집도를 했다고 합니다.

 

제왕 절개 수술은 대부분 정상 분만을 시도하다가 문제가 생길 때 응급으로 하는 수술입니다.

그런데 군인 가족 중에 아기를 낳으려고 군 병원에 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또, 그들 중에 수술을 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이 사람은 그럼 몇 번이나 제왕 절개 수술을 구경하고

자신도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했을까요?

 

나는 더 이상 그에게 할 말이 없었습니다.

참 무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그 자리에 같이 있으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냥 병원을 나와 부대로 돌아 왔습니다.

 

그리고 수일 후, 산모는 그 원장님이 우리 부대장의 부탁을 받고

특별히 병원비를 깎아 주었다고 기뻐하며 퇴원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마침 우리 부대가 약품과 소모품 보급을 받는 후송 병원에 산부인과를 마친 선배 군의관이

있어서 보급을 받으러 가는 날 나는 그 선배를 찾아가 물어 보았습니다.

 

< 선배님! 지난번에 우리 부대 군인 가족이 제왕 절개 수술을 받다가

  출혈이 심해서 아주 애를 먹었습니다. >

< 그래?? >

 

< 산모에게 수혈을 해야 한다고 해서 내가 사병들을 데리고 갔었어요. >

< 고생했구나.>

 

< 쌍둥이라서 그렇게 출혈이 많았나 보지요? >

< !!!!!!!! >

 

선배가 갑자기 나를 쳐다보았습니다.

 

< 야! 쌍둥이를 왜 수술 하냐? >

< 예!!??????? >

 

< 쌍둥이는 수술을 안 해. 아이가 작은 데 왜 수술을 해........... 잘 나올 텐데.... >

 

( 참고: 지금은 쌍둥이 임산부는 수술을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러나 그 때는 달랐습니다. )

 

< 그래요? >

 

역시 그 때 그 원장은 쌍둥이인 줄을 모르고 산모의 배가 크니까 아이가 크다고 생각하고

수술을 한 것이고 수술을 하면서 쌍둥이인줄 알고 당황한 것 같았습니다.

그 원장의 실수(?)로 참 여러 사람이 고생을 했습니다.

 

정상 분만보다 수술비가 더 많은 것을 그 원장이 미리 생각하지는 않았겠죠.

설마..............

 

그러나 자신의 실수로 여러 사람이 고생을 했고 산모는 생과 사를 오갔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 후에라도 그 원장은 스스로 참회를 했을 것이라고 믿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약 10년이 지난 후 우연히 그 곳에 갈 일이 있었습니다.

버스 터미널 가까이에 있던 그 병원은 없어지고 그 자리에 큰 여관이 새로 지어져 있었습니다.

 

마침 그 곳에 개업을 하고 계신 선배님을 만나 이야기를 하던 중에

그냥 궁금해서 물어 보았습니다.

 

< 선배님! 저기 여관자리 말이예요. 전에 병원이 있었던 자리 아닌가요? >

< 자네가 어떻게 알아? >

 

< 내가 여기서 군의관으로 있었잖아요. >

< 그래? >

 

그리고 이어진 선배의 말은 의사인 나도 참 부끄러운 이야기였습니다.

 

< 나 그런 사람 처음 봤어. 그런 사람이 어떻게 의사가 되었는지......>

 

선배님은 먼저 한 숨을 쉬고 이야기를 시작하시는 데 참 어이가 없었습니다.